2017년 5월 13일 토요일

조선왕조 역대국왕 세조(世祖)에 대하여

조선왕조 역대국왕 세조(世祖)에 대하여 



조선왕조의 기반을 완성한 군주이나, 평가가 여러모로 엇갈리는 군주

세조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세조는 임금이 되기 전 군호인 수양대군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 왕조의 기반을 완성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가 매우 엇갈리는 왕 중 한명으로 군주로 재위했을 당시 

어떤 점에 집중할 것인지에 따라 평가가 갈리게 되는데

폭군과 주권의 강화에 노력한 군주까지 평가가 다양하다.

정권과 정치색에 따라서도 평가가 갈리는데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한 사레가 

두 차례나 있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관련해서 굉장히 고평가 됐었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1970~80년대의 평가와 1990년대의 평가가 매우 상반된다.

민주주의 정권에 들어서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군사 정권에 의해 권력을 찬탈한 정통성도 없는 암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희대의 패륜아 임금-

세조의 패륜행위는 다른 폭군들에 비할 수도 없는다.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현덕왕후를 폐서인하고 문종의 왕릉을 파헤쳐 평민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그 무덤에는 현덕왕후와 합장이 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왕가의 두명의 무덤을 파헤친 것이 된 것이다. 

또한 동복동생인 안평대군, 금성대군을 죽였다.

단종복위모의와 관련해서 자신의 동생들을 죽여버린 것들인데

반란 혐의 만으로 친족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여러 야사에는 많은 백성들을 학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야사이기 때문에 사실인지는 모름)

친족을 죽이는데 전혀 꺼리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권력에 도전할 만한 존재는 송두리째 뽑아버린 방침을 세웠지만

너무나 잔인했다는 평가는 지울 수 없다. 



세조가 가장 욕을 먹는 문제는 단종관련 문제인데 

세조는 조카를 자기손으로 죽이고 시체 수습도 하지 않았다.

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해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다."라고 적어놓았지만

사실은 엄흥도라는 인물이 대신 수습했다. 

(엄흥도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단종이 세조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단종의시신을 돌보지 않았으나
엄흥도는 관을 비롯한 장례 기구 일체를 혼자 마련해 장사를 치루었다.
후에는 벼슬을 내놓고 아들을 데리고 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친촉을 잔인하게 죽여버린 많았으나 세조는 정말 너무했다고 볼 수 있다. 


-왕위 찬탈의 업보-

세조는 자식복이 없었는데 장남은 세조가 왕이되고 3년만에 죽고

차남 예종은 즉위 13개월만에 죽었다. 둘다 20세를 못 넘기고 요절했는데

때문에 자신의 직계자손이 아닌 배다른 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다.

왕위를 찬탈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세조의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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