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1일 목요일

조선왕조 영조(英祖)에 대하여

조선왕조 영조(英祖)에 대하여


조선의 중흥기를 이룩한 명군이자, 세도정치의 서막을 열어버린 암군 

*세도정치 : 국왕의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은 특정인과 추종세력에 이루어지는 정치 형태
원래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를 의미하였으나
강력한 권세를 잡은 특정인이 전권을 휘두르는 부정적 형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영조(英祖)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권력자로는 100점이었으나 왕이나 아버지로서는 0점이었던 평가가 많다.


영조는 조선의21대 국왕으로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때 왕비였던 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과 달리,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미천한 무수리 출신 이었다. 때문에 정통성 문제에 계속 시달리게 되는데, 후에도 평생 컴플렉스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도 조선 왕 재위기간 중 가장 긴 52년을 재위했으며, 가장 장수한 군주이다. 영조는 83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평균수명을 생각해보면 정말정말 오래 살았던 것이다.


영조는 대중에게 탕평책과 사도세자의 아버지로 유명한 왕이다. 

정책과 정치는 크게 성공한 권력자이나 가정은 챙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자인 정조에게 평생 상처를 줬다.

-탕평책-

붕당정치의 폐해를 줄이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실시했다.
실질적으로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더 많이 배치했으나 
실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사람이 많다.

정치를 주도하던 세력은 노론이었으므로, 완전한 탕평책은 아니긴 하다.

-통치 기간-

영조의 통치 기간동안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황폐했던 조선이 완전히 수습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백성들을 통치했다. 백성에게는 너그러웠으나 관리들이 죄를 지으면 엄하게 죄를 물었던 왕으로 평가 받는다. 
또한 스스로도 굉장히 검소하여 옷을 재활용하였으며 침실에는 이불과 베게, 식사는 밥과 김치, 장류로만 이루어졌다고 이어진다.


-한계-

아버지로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였던 영조는 정적이었던 소론이 제거되고 나서도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결국 사이가 벌어져 뒤주에 아들을 가둬죽였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